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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8 오후 7:55:14ㅣ조회:3929]
사람답게 사는 사람 
결국은 사람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것이다.
명사칼럼 - 김동길 박사
1928년 평남 맹산 출생 연세대 부총장, 조선일보 논설 고문,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으로 있다

얼마 안가서 지구상의 인구가 70억이 되리라고 하는데, 그 70억이 다 제대로 사람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문명이 생긴 후에 인류의 역사를 5천 년으로 잡아도 그 반만 년의 세월 속에 오고 간 사람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겠으나, 그 중에 사람다운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생각하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사람은 많지만 <사람>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개개의 인간도 육, 칠십 년의 한평생을 살면서 상당한 수효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기억에 남을만한 훌륭한 사람은 몇 되지도 않는 것 같다.

훌륭한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한번 보고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그 사람의 잘못만을 미워하라는 성현들의 말씀이 없는 바는 아니나, 미운 사람은 보기조차 싫어하는 것이 인간의 상정임을 어찌하랴! 저렇게 잔인한 사람, 저렇게 간사한 사람, 저렇게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 저렇게 재주를 잘 부리는 사람 - 저런 사람은 세상에 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여겨지는 부류의 인간이 적지 않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살기가 괴로워진다. 결국은 사람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 이 지구 위의 우리 삶을 숨막히게 하는 것이지 천재지변 때문에 우리가 못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오래 같이 있어도 답답하거나 지루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또는 있으리라는 신념 때문에 우리가 아주 낙심하지 않고 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시원한 사람, 사람다운 사람을 이 현실 속에서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불가불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런 인물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 좋은 것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는 시원한 바람을 만나고 생의 보람과 기쁨을 되찾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사람의 크기란 결국 그 사람이 품은 사랑의 크기와 비례하는 법이다. 소인은 자기밖에 사랑하지 않는다. 소인은 자기 일가와 친척 밖에는 사랑할 줄 모른다. 그러나 큰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남을 사랑한다. 자기 집안의 번영이나 성공을 위해 힘쓰지 않고 민족과 국가와 세계와 우주를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랑은 사람의 크기를 측정하는 유일한 기준이요 척도이다.

소인은 남을 미워하고 누르고 짓밟고 괴롭게 하는데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소인의 사전에는 용서나 아량이 큰 힘을 걸머쥐면 민중의 불행은 가중되게 마련이다. 소인의 사전에는 용서니 아량이니 하는 단어가 죽은 말이라고 적혀 있는지도 모른다. 전혀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것을 낙으로 삼는 사람,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람, 역사는 그런 사람을 거인이라 부르고 위인이라 숭상한다. 그런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파리만큼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악한이 우리 주변에는 우글우글하다. 불신, 냉혹, 무자비, 중상, 모략, 독선, 자학 등의 낱말이 우리 현실에는 너무도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구나!

그래서 우리는 여유있는 웃음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위해 웃어 주기도 하고 또 우리를 마음껏 웃겨 주기도 할 그런 인물은 없는가고 애타게 찾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 아니겠는가? 이 현실 속에서 찾다 못찾으면 인류의 역사 속에서라도 찾아내야만 우리는 살 수 있다. 웃음없는 인생을 구태어 살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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