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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오후 10:43:59ㅣ조회:4203]
친구(탈북여대생의 일기) 
북한에서의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냥 철없게만 느껴진다.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 항상 같이 재미나게 놀아주는 친구? 아니면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일까? 또 외로울 때 곁에 있어주는 친구? 아마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무수히 많은 친구들이 존재할 것이다. 물론 나쁜 친구들도 존재하기는 하나 그들을 나는 친구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쁜 누구누구라고 하면 했지 나쁜 이라는 글자에 친구를 붙이기는 싫다.

북한에서는 친구를 “동무”라고 한다. 즉 친구라는 말보다 동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혁명을 위하여 함께 싸우는 사람을 동지 또는 동무라고 칭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도 70, 80년대까지는 동무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하였으나 북한의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이데올로기 즉 반공 이데올로기체제하에 동무라는 말이 사라지다시피 된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에서 혁명을 위해 함께 싸우는 전우를 칭하며 쓰이던 동무라는 말을 몰아내고 친구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북한에서의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냥 철없게만 느껴진다. 어린나이인지라 당연히 철없게 느껴지겠지만 그래도 지금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비해보면 정말 많이 철없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같이 하는 짓이라고는 제기 뿌리기, 또 줄넘기, 꽁기 등 잡다한 놀음만 놀았던 것 같다. 영어나 수학, 국어 등 공부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이 마냥 노는 것만 즐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오전에는 공부만 하고 오후에는 놀 수 있다면 오전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놀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오전에는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농장원이 되어야 했다. 인민학교나 중학교 학생일지라도 고사리 같은 손에 펜 대신 호미나 낫을 쥐고 학교로 가야 했고 그 호미와 낫을 쥐고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면서 농장 밭으로 줄을 지어 가야 했다. 또 책을 봐야 될 눈동자이건만 농장 밭에 있는 강냉이 영양단지를 골라야 하고 삐삐라는 풀과 또 돼지 풀 등의 잡풀이 얼마나 나왔나 보고 호미로 또는 낫으로 농장 일을 해야 했다. 그러지 않아도 하기 싫은 공부인데 그렇게 농장 일까지 해야 되니 오전이면 마냥 놀 생각밖에 들지 않음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한번은 오후에 농장 일을 하러 가기가 너무 싫어서 학급 친구와 함께 학교를 가지 않았다. 마침 영화관에서 매일 하던 영화가 아닌 새로 나온 영화를 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고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영화관을 갔다. 그러나 표를 사기 위해서는 남자들이 필요했다. 워낙에 많은 남자들이 매표소입구를 막고 표를 사고 있어 우리 같은 여자아이들은 얼씬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표를 사줄 남자도 없는 상황이고 또 표가 다 팔리면 들어도 가지 못하는 처지라 하는 수 없이 난 남자처럼 그 사이를 헤집고 매표소 입구 앞까지 도달했다.

그 우락 부락하는 남자들 틈에 끼워 겨우 매표소 앞까지 간지라 머리는 엉망이고 또 얼굴에는 땀이 철철 흘렀고 사람들이 하도 붐비어 먼지란 먼지는 모두 내 얼굴에 묻은 마냥 더러워진 모습이었다.

매표소 계단까지 올라가야 표를 살 수 있으나 그 계단에는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었다.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과 또 쪼금만 잘못하면 금방이라도 때릴 것 같은 사나운 청년들이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밑에서 계단에 올라선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한 아저씨의 바지자락을 흔들면서 표 두 장만 좀 떼어달라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저쪽에 서있던 친구는 내가 보이지 않아 높이 퐁퐁 뛰면서 날 부른다. 친구는 그러다 사이에 집혀서 나오지 못한다고 빨리 나오라고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제는 아저씨가 아닌 옆에 청년의 바지자락을 흔들었다. 흔들면서도 발로 날 차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흔들면서 표 좀 사달라고 소리 질렀다.

그 청년을 비롯하여 그 매표소 입구 계단까지 올라간 사람들은 거기서 표를 사서 우리같이 표를 사지 못한 사람들에게 돈을 조금 더 받고 파는 나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일원도 더 주지 않은 채 그냥 사달라고 하니 사줄 리가 있겠는가....

결국 소리만 지르고 또 머리는 폭격 맞은 것처럼 삼발이 되고 얼굴에는 먼지만 가득 묻힌 채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고 말았다. 친구는 내 모습이 그렇게 웃겼던지 깔깔거리고 죽겠다고 웃었다. 그리하여 표는 본 가격보다 2원을 더 주고 사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아주 재미있었으나 영화관 밖에는 호랑이 같이 무서운 우리 옆반 선생님이 계셨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정문으로 수다를 떨면서 좋다고 나오던 우리 둘은 그만 선생님께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하도 농촌동원에 빠진 학생들이 많아서 선생님이 집적 빠진 학생들을 잡으러 오셨다고 했다.

우리 둘은 그렇게 학교로 끌려가다시피 가 죽도록 맞았다. 난 이까지 나갈 정도로 맞았고 그 친구는 눈이 퍼렇게 멍들고 또 코피까지 나도록 맞았다. 난 비록 흔들어서 이갈이를 해야 하는 이였지만 그런 이가 아니었을지라도 아마 그 선생님께 혼난다면 이가 나갔을 것이다.

그때를 기억하면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것은 매를 맞았던 기억이 아니라 그 때 그 친구가 나를 위해서 선생님께 했던 얘기이다. 나한테는 아무 잘못도 없고 자기가 영화보고 싶어서 날 꼬드기었고 또 농촌동원을 가려고 했던 나지만 자기가 또 꼬드기어 영화관까지 데려 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혼내도 자기만을 혼내라고 한다. 그때의 인민학교 학생이라면 먹을 것에만 집착하고 또 매가 무서워 자신이 한 짓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철없는 때이었건만 감동적인 영화 한 편을 찍 듯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는 부분이다.

농촌동원을 가지 말고 놀자고 한 것도 나이고 또 영화 보러 가자고 한 것도 나인데 그 친구가 스스로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그 친구는 매도 더 맞았다.

난 선생님께 맞으면서도 즐거웠다. 그렇게 좋은 친구와 함께라면 맞는 것도 즐겁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나한테 그런 배려를 해주는 친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와 난 그 후로 아주 많이 친하게 지냈었다. 서로의 분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내가 중국으로 떠나면서 그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 시집도 같은 날 같이 가자고 약속했건만 아마도 그 친구는 지금쯤 시집을 가 아기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고달픈 삶에 찌들려 나란 친구의 존재를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와서 대학교로 들어가 몇 년이 흘러 친구는 여러 명 있지만 그 때 그 친구와 같은 진정한 친구는 없다. 난 “왜 그런 친구가 없을 까” 하고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러나 친구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수많은 어려움, 기쁨 등이 있을 때 서로를 도와주고 격려해주며 함께 해주는 제2의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인생사에 있어 또 다른 내가 있다면 그만큼 든든한 것은 없는데 말이다. 즉 친구는 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때문에 항상 좋은 자세의 맘으로 타인을 위해주고 도와줄 때 비로소 그 때 그 친구와 같은 진정한 친구는 생기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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