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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1 오후 11:23:25ㅣ조회:3837]
거짓말만 덜 해도 
사람 사는 세상이 이토록 힘들게 된 근본 원인이 꼭 한 가지 있습니다.
명사칼럼 - 김동길 박사
1928년 평남 맹산 출생 연세대 부총장, 조선일보 논설 고문,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으로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이토록 힘들게 된 근본 원인이 꼭 한 가지 있습니다. 매우 간단한 것입니다. 그것이 다름 아닌 거짓말입니다. 옛날에 거짓말 대회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 연사들이 나와서 각종 거짓말을 했습니다. “저는 아침에 두부를 먹다가 그만 돌을 하나 씹어 어금니가 부러졌습니다.” 모두가 웃었습니다. “거짓말도 너무 하다. 두부 속에 무슨 돌이 있겠냐. 그리고 아무리 꽉 씹어도 이빨이야 부러지겠느냐.”

한 놈은 나와서 더 지독한 거짓말을 했답니다. “방금 오다가 큰 돌이 하나 거미줄에 걸려 흔들흔들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더 크게 웃었습니다. 그 거짓말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연사들은 모두 상을 타지 못했답니다.

마지막으로 등단한 능청맞은 놈이 점잖게, 엄숙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평생에 거짓말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이놈에게 일등상을 주었답니다. 평생에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이놈에게.

몇 달 전에 세상 떠난 김수환 추기경의 잊지 못할 유머가 한 마디 있습니다. 언젠가 그를 찾아간 기자가 물었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영어·불어·독일어 등 여러 나라 말을 잘 하신다는데 사실입니까.” 추기경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답니다. “나 잘 하는 말 하나 있어요.” 기자가 물었습니다. “무슨 말인데요.” 추기경이 대답하였습니다. “거짓말” 참으로 추기경다운 농담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실이 스며있는 농담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이건 아니건,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양심의 소유자가 있는 반면에 우리사회에는 “죽어도 거짓말은 안 한다”는 고약한 거짓말쟁이들이 우글우글합니다. 교사가 거짓말로 학생들을 속이고, 목사가 거짓말로 교인들을 속입니다. 교사도 모르는 게 있어 마땅합니다. 선생이 모르는 걸 학생이 물으면 “잘 모르겠다. 공부하고 와서 내일 알려주겠다”해도 될 것을, 괜히 화를 내면서, “그런 건 몰라도 돼”하며 야단치는 교사가 한둘이겠습니까. 제가 가보지도 못한 천국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헌금만 많이 내면 거기 갈 수 있다”고 허황한 약속을 교인에게 하는 목사 아닌 목사가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의 큰상은 역시 정치꾼들 몫입니다. 금방 탈로가 날 거짓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자들! 좌니 우니 편을 가르고, 더러는 “중도”라고 하면서, 허무한 “진실”로 계속 유권자를 속입니다.

지난 9월 9일 오바마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 회의석상에서 건강보험 개혁안에 대해 연설하는 도중 공화당 소속의 하원의원 죠 윌슨이 오바마를 향해 큰소리로 “거짓말을 한다”며 손가락질을 한 사실이 엄청난 물의를 일으켜, 윌슨 의원의 정치생명을 단축시킬 가능성이 많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라고 전해집니다. 윌슨은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는 정치인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의 용어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낙인을 찍는 한 마디가 “당신은 거짓말쟁이요”라는 것입니다. 만일 정직한 사람을 향해 공공한 장소에서 누가 그런 말을 하면 결투를 신청할 수밖에 없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게 마련입니다. 사실은 클린턴이 탄핵 직전까지 갔다가 운이 좋아 살아났는데, 사실은 그가 르윈스키와의 불미스런 사생활이 문제가 아니라 의회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열 배는 더 심각한 문제이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공직에 앉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 미국적 가치관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마 이런 말을 들으면 가슴이 뜨끔한 국회의원이 한 두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불미스런 사실을 감추고 “깨끗하다”고 거짓말을 하여 겨우 목숨을 이어가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은 대한민국의 실정을 생각하면 선진국에 끼어들기가 아직도 요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의 존재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천당이나 극락이나 천국에 가기 위한 그 한 가지 목표가 있을 뿐입니까. 그것은 오로지 “저 세상”에 갈 때 고약한 곳에 떨어지지 않고 좋은 세상에 가서 길이 살겠다는 소박한 염원일 뿐인데, 옛날 우리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그것이 다만 근거 없고 불확실한 미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저 세상”만 강조하다 보면, 우리가 오늘 살아야 하는 “이 세상”은 매우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 세상” 없는 “저 세상”은 상상도 못할 허망한 세상입니다.

종교는 인간에게 도덕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 때에만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한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는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오늘의 기독교가 과연 제 구실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때가 많습니다. 기독교인이 과연 뛰어나게 진실하고 월등하게 선량하다는 무슨 증거라도 있습니까. “기독교인은 이웃을 사랑한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기독교는 오늘 위선의 거대한 아성을 하나 구축하고 그 안에서 갈 수도 없는 천국을 운운하고 앉았습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우리로 하여금 이 거짓의 토치카를 때려 부수고, 진실과 자비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시옵소서.


김동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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