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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2 오후 4:52:01ㅣ조회:2177]
노조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대한민국 파괴하기
1811년 공포의 밤은 영국 랭커셔 지방에서 시작됐다. 해가 지고 도시에 어둠이 깔리면 거리 곳곳에서 요란한 굉음들이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어떤 시민들은 공포에 질렸고 어떤 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교회로 달려가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도 정체를 모르는 사람, 미스터 러드(Ludd)로만 알려진 이 복면의 사나이는 밤이 되면 묵직한 해머를 둘러 멘무리들을 이끌고 도시에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그가 정의를 구현하고 있다고 믿었다. 미스터 러드가 세상을 구하는 방식은 자본가들이 소유한 공장의 기계들을 때려 부수는 것이었다. 이른바 ‘러다이트’, 기계파괴운동이었다.

한국판 ‘러다이트’, 대한민국 파괴하기

80년대 후반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대한민국에서도 불법과 폭력을 동원한 ‘한국판 러다이트’ 노동운동이 일어났다. 170년전 영국의 러다이트와 차이점은 때려 부술 대상이 기계가 아닌 ‘대한민국 체제’였다는 점이다.

당시 노동운동 주체들이 주장한 ‘체제변혁’은 다름 아닌 ‘노동해방’을 통한 공산주의혁명 노선이었다. 그 뿌리는 해방 후 <조선민주청년동맹>과 더불어 <조선공산당>의 양대세력이 주도한 좌익계 노동단체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이른바 ‘전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평은 8·15광복을 계기로 무산계급의 해방을 부르짖던 공산주의운동이었다. 그리고 80년대 후반 ‘전노협’을 거쳐 지금의 민주노총에 이르렀다.

“민주노총은 단순한 노동조합이 아닌 정치 투쟁조직입니다. 이러한 점은 그동안 민주노총의 불법파업과 폭력행위를 통해 밝혀졌지요. 노동조합을 앞세운 불법 노동운동은 기업의 생산현장을 정치투쟁의 장으로 전락시키고 기업의 생산성 저하와 사회적 손실을 초래해 왔습니다.”

2010년 2월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서 ‘발레오 전장’을 이끌었던 정홍섭 위원장은 민주노총을 탈퇴하면서 언론에 그렇게 말했다. 근로자의 권익과 복지가 아니라 처음부터 자본주의 타도라는 이념을 가진 인사들이 주도한 민주노총은 이념운동의 한계에 부딪히자 김대중-노무현 좌파 정권하에서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던 이가 또 있었다. 바로 민주노총의 초대 사무총장으로 87년 노동투쟁의 선봉에 섰던 전향 노동가 故 권용목이었다.

그는 2010년 유고작으로 출간된 ‘민주노총 충격 보고서’에서 민주노총 간부들의 부패와 타락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전임자들이 거액의 노조비를 빼돌려 주식투자를 하거나 취업을 미끼로 한 수뢰, 납품을 조건으로 향응을 받는 사리사욕 추구는 만연한 관행이었다. 노조는 거대한 이권투쟁의 현장으로 타락했다. 한마디로 파렴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권용목 전 총장은 책에서 고백하고 있다.

기아차나 현대와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불법파업은 노조의 수익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파업으로 해가 뜨고 해가 졌다’고 말하는 파업 현장에는 단 한번 파업에도 수십억의 돈들이 오고 갔다. 권 총장은 그러한 행태가 “조폭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한국의 산업계는 그렇게 멍들어 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한국은행의 통계를 이용해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2~87년까지는 실질 임금인상률이 노동생산성과 일치하는 수준으로 증가해 왔다. 그러나 ‘87 민주화’와 함께 극렬한 노동투쟁이 전개된 1987년 이후부터는 임금인상률이 노동생산성을 웃돌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국내 잠재성장률은 87년에 최고치인 9%에 달했다가 감소를 계속해 2010년에는 3%대로 하락했다. 높은 노동비용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 먹고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로 몰아넣은 것이다.

종북 주사파에 포획된 노동운동

더 큰 문제는 90년대부터 시작됐다. 민주노총이 사회주의 이념의 벽에 부딪히면서 종북주사파 운동가들의 노선에 포획돼 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현장은 지난 2012년 대선 전 일어난 한 사건이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소위 ‘8.15 노동자 통일 골든벨 사건’이 그것이다.

2012년 8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는 민주노총 주최로 500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해 ‘8·15 노동자 통일 골든벨’ 행사를 열였다. 금속노조, 전교조, 전국공무원노조 등이 참석했다. 행사의 사회를 본 전교조 소속의 백모 교사는 퀴즈 이벤트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나이, 그리고 대한민국의 원수 이명박 대통령과 공천헌금을 받아 처먹은 년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나이를 합하면 모두 몇 살이냐’고 물었다.

이날 출제된 21개 문제 중엔 ‘미군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러 온 날짜는?’ ‘2008년부터 미국놈들이 해온 전쟁연습은?’ ‘북한과 교육하는 걸 원천봉쇄하기 위해 미국이 만드는 협정은?’ 등 반미반정부종북을 선동하는 문제들이 포함됐다.

이 사건 보도로 국민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민주노총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2006년 8.15행사를 위해 방북해서는 ‘혁명열사릉’에 참배하고 헌화한 사실도 있다. 민주노총내에 종북이 이미 오래 전에 뿌리내린 증거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대한민국의 근로자들을 대표하고 있을까.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의 분석에 의하면 대한민국 노동계는 전체 근로자의 6.6%에 해당하는 대기업 노조가 담합해 재계와 정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위 귀족노조라 불리는 그룹들이다.

민주노총을 통해 이들이 주도하는 노동질서는 노조 없는 중소기업과 자영업,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 더구나 이들이 이끄는 노사협약의 방향은 산하 노조를 상대하는 중소기업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비정규직 문제다.

OECD국가들은 비정규직을 금지하기 보다는 비정규직을 허용하되 동일가치노동의 경우 정규직과 임금 차이를 줄이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정규직 보호를 이유로 아예 비정규직 채용을 막는 수준이다. 배후에는 민주노총이 입장을 바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있었다. 그러자 노조의 눈치를 봐야 하는 야당과 정치권은 서로 경쟁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입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는 중소기업들 입장에서는 아예 고용을 하지 말라는 명령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는 정규직의 임금조정과 해고 요건이 법에 의해 대단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정규직 노조가 단체협상에서 10%의 임금인상을 요구해 타결되면 당연히 사측은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을 10%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한마디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몫을 가져가는 ‘약탈협상’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사측과 정치권에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면 노조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겠지만 그것은 회사가 망하든 말든 관계치 않겠다는 입장과 같다.

그러한 입장을 가진 민주노총을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들이 비정규직보호법을 피하기 위해 하도급제도를 실시하자 이번에는 정치권이 하도급마저 금지하는 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이라면 돈 있는 대기업들이 정부를 믿고 고용을 늘릴 리 만무하다. 가능한 해외 생산에 주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과 비타협적인 민주노총의 노선은 하부노조들의 탈퇴를 불러왔다. 여기에는 2011년에 시행된 복수노조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 2년전 민조노총을 탈퇴해 4만여 조합원으로 독자 설립된 국민노총의 정연수 위원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제 이념과 이데올로기 시대는 한계가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장의 많은 조합원이 사업주와 상생·화해를 하지 않아 회사가 망하게 되면 노동자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노조 내부에 뿌리 깊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에 대한 개혁 요구도 국민노총의 출범 원인이 됐다.

국민노총, 이념 반대·상생 추구

국민노총 산하에는 현재 서울메트로지하철노조와 KBS공영노조, MBC공정노조 등과 함께 전교조에 대항하는 자유교원노조가 가입해 있다. 이로써 한국에는 60년된 한국노총과 20년이 넘은 민주노총, 그리고 국민노총 등 3개 노총이 활동하게 됐다. 이 가운데 국민노총은 정치 불참여를 선언했다 정연수 위원장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노동계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여야가 문제를 같이 이해해야 노조법 개정과 근로조건 개선이 이뤄지겠지만 지금 노동계의 정치 참여는 소수 지도부의 정치적 욕망에 불과한 것이어서 국민 대중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제3노총인 국민노총의 분화 독립은 향후 우리 노동계에 여러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민노총 관계자들은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방해가 너무 심하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특히 민주노총과 연대하고 있는 야권과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한국노총이 국민노총을 견제하기 위해 동원하는 정치적 압력은 가공할 만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하지만 국민노총은 공정과 상생의 길이 시대정신으로서 옳다고 믿고 있고, 결국 근로자들은 국민노총의 길을 지지해 따를 것이라고 정 위원장은 확신하고 있다. 정연수 위원장의 그러한 확신은 외부에서 먼저 등장했다.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은 체제변혁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노동운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노사간에 상생과 타협이라는 원칙을 버리면 해결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판사의 법복을 벗고 분쟁의 노동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던 조영길 변호사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노사 갈등의 문제를 보편타당성의 원칙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사 모두 과도하고 불의한 이익을 내려놓으라는 주문이다. 조영길 변호사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노사 서로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한 상대적 가치로 인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절대적 가치, 즉 무엇이 정의로운가를 생각해 본다면 답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노동문제 전문가인 조영길 변호사의 이러한 주장은 독일과 같이 노사정 합의 체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의 노조에게는 보편적 상식이다. 지난 2003년 사민당 슈뢰더 정부하에서 독일은 ‘Agenda 2010’이라는 경제개혁 정책을 입안했다. 소위 독일병이라 불리는 침체된 독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복지축소, 연금조정과 같은 내핍정책이 도입됐다. 당연히 독일 노조로서는 참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독일 노조는 비슷한 개혁정책이 추진되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노조와는 달리 사회적 타협을 받아들였다. 독일 사회에는 사회적 갈등을 한 차원 높은 질서로 통합하는 전통이 존재해 왔다. 바로 사회적 시장경제의 근간이 된 ‘오르도’(Ordo)라는 질서가 그것이다. 그 질서는 캘빈과 루터의 종교개혁이 축적해 온 청교도적 가치였다. ‘탐욕을 버리고 구현하라’는 오르도의 초월적 질서는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하는 독일의 정치권과 기업 그리고 노조 모두가 순응해야 하는 ‘절대가치’였다.

바로 조영길 변호사가 주장하는 ‘무엇이 정의로운가’라는 질문과 정연수 국민노총 위원장이 주장하는 ‘행복과 상생’은 바로 독일 사회가 통합의 질서로 내면화해 온 ‘오르도’에 다름이 아니다.

‘오르도’의 가치, 노사 상생의 길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고용이 다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직자들이 기계를 때려 부순 효과를 본 것이 아니라 경기가 다시 좋아졌기 때문이다. 러다이트를 불러온 영국의 대량 실직은 기계 때문이 아니라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물가상승과 불황의 영향이었다. 하지만 2013년 현재 한국의 자본주의를 때려 부수려는 러다이트는 계속되고 있다.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대중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노동해방 세상을 여는 노동자 계급정당 건설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겠다.”

지난 27일 서울 용산 철도회관 대회의실에 모인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추진모임(변혁모임)’은 성명을 통해 그렇게 주장했다. 변혁모임은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공무원노조, 전교조 등 주요 산별연맹 소속 노동운동가들로 구성된 노동자계급정당 추진단체다. 이들은 올 11월 본격적인 노동계급 정당을 창당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기존의 진보정당은 더 이상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자본주의를 타도하겠다는 한국 노동운동은 어쩌면 마지막 자살 유서를 쓰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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