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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4 오후 1:07:50ㅣ조회:7820]
김대중부부의 예수님은 선거용? 
최서면씨가 김대중을 천주교와 장면 부통령에게 소개.
좌익전력을 감추기 위해 천주교로 접근

6.25 전후 좌익전력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그는 반공의 보루이던 천주교 세력에 접근하여 보호를 받았다는 증언이 있다. 그의 친구인 최서면씨의 회고담이다. 대한매일 1999년 6월12일자 김대중 대통령 인터뷰 기사에 최씨가 거명되어 있다. 김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 모든 일은 최서면씨라고, 그때 서울교구 사무국장으로 있던 제 친구가 주선했는데, 장박사를 대부(代父)로 소개해 준 사람도 그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장박사하고 영적으로 대부ㆍ대자(代父ㆍ代子)의 관계가 되었고, 그 인연으로 저는 신파의 총수인 장박사 밑에서 젊은 엘리트로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서면씨에 따르면 당시 웅변학원을 하고 있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김상현(金相賢) 전 의원과 함께 경향신문 4층에 있던 자신의 천주교 총무원 사무국장 방으로 자주 놀러왔다고 한다. 그때 김대통령은 최서면씨에게 『천주교 신자가 됐으면 좋겠으니 신부를 한 분 소개해 달라』고 요청한다. 최서면씨는 당시 최남선, 김성수, 오화영(吳華英) 등에게 교리를 가르쳐 명성이 높은 윤형중 신부를 소개했다.

김대중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리학습을 했다고 한다. 윤형중 신부는 최서면씨에게 『자네가 보낸 그 사람 똑똑해. 질문하는 거 신랄하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세를 받은 김대중씨는 최서면씨에게 「토마스 金大仲(편집자 注ㆍ김대중 대통령의 개명 전 이름)」이란 사인이 적힌 사진을 하나 보냈다.

영세를 받고 나서 김대중씨는 『뭐가 되고 싶냐』는 윤형중 신부의 질문에 『정치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신부는 최서면씨에게 『직속 상관이 장면(張勉) 박사니까 자네가 소개하라』고 이야기했다. 최씨는 김대중 대통령을 서울 소공동에 있던 경향신문 고문실에서 부통령 겸 민주당 최고위원인 장면 박사에게 소개했다.

"선거를 위해 천주교인이 되고 부인은 개신교인이 된 것이 아닌가?"

최씨의 증언. 『장면 박사와 노기남 주교는 천주교의 가장 큰 고민이 인재난이라고 말해 왔어요. 우리가 3ㆍ1운동 때 천주교 대표가 참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으니까요. 인물을 길러보자는 의미에서 이홍규(이회창씨의 선친. 당시 검사), 김대중씨 등을 환영한 겁니다』
최씨는 장면 박사에게 『나는 정계 진출을 안 하니 나를 생각하시듯이 김대중씨를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이런 깊은 내용이 있어선지 장면 박사와 노주교는 김대중씨를 각별히 대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았던들 김대중씨가 하루아침에 민주당 상무위원, 선전부장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최씨는 말했다.
『1972년 김대중씨가 망명한 뒤 미국 CIA와 한국 중앙정보부로부터 질문을 받았고, 주일 미국 대사 로버트 잉거솔의 특별보좌관인 아마코스트(주일 美대사 역임)가 직접 찾아와 물었습니다. 주로 「김대중 종교는 가짜 아니냐. 김대중 자신은 가톨릭에 다니면서 부인이 개신교에 나가는 것은 선거 때 표를 얻으려는 전략 아닌가」 등이었습니다. 나는 사람을 공격할 게 있고 안할 게 있다고 했어요. 나와 김대중의 관계를 소개하고, 그 사람의 신앙은 의심하지 말라고 했어요』

북한과 김대중과의 접촉

1960년 4.19 학생의거로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난 뒤 민주당이 집권하고 장면씨가 국무총리가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 아래 장면 총리의 비서실장이던 선우종원(鮮于宗源)씨는 장총리파로 몰려 탄압을 받다가 일본으로 건너가 8년간 망명생활을 보낸 뒤 귀국하여 조폐공사 사장이 되었다. 돌아와 보니 보도연맹 교육요원이던 김대중씨가 국회의원이 아닌데도 민주당의 대변인으로서 장면 총리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선우씨가 장총리에게 김씨의 사상문제를 지적했다. 장 총리는 "나도 그런 말을 많이 듣고 있는데 의원총회를 할 때 해명을 하도록 시켜야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 선우씨가 다시 장총리를 만났는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김대중 대변인에게 이야기를 시켰더니 한 시간 동안 해명을 하는데 모두가 말솜씨에 감탄했다. 모두가 의심을 푼 듯하다"

북한정권이 김대중씨에게 주목하고 그를 포섭대상으로 삼아 접촉을 시도한 최초의 사건은 1967년이었다. 김대중씨의 목포상업고등학교 1년 선배인 정태묵은 김씨가 좌익 신민당 조직부장으로 활동할 때 남로당원으로 일하다가 구속되어 7년형을 복역중 6.25를 만나 탈옥했다. 그는 북한으로 올라가서 간첩이 되어 내려왔다. 정씨는 1967년 총선 때 목포에서 출마한 김대중씨에게 접근하여 선거전략을 가르쳐주고 선거운동원을 소개해주었다. 정씨는 임자도 간첩사건의 주범으로서 1968년 구속되었고 사형이 집행되었다. 정보부는 김대중 의원이 정씨를 간첩으로 알고 만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기소하지 않았다.

간첩죄로 사형 확정되었던 김대중

1971년 4월 대통령 선거에서 진 김대중씨를 김일성 정권은 공작대상으로 삼았다. 1972년 10월 유신선포 후 일본과 미국을 무대로 반정부 활동중이던 김씨에게 접근한 것은 재일민단(在日民團) 파괴공작에 앞장선 조총련과 친북파였다. 이들과 합세하여 만들기로 한 것이 한민통이었다. 김대중씨는 이 단체의 의장으로 취임하기 직전에 납치되었다. 이후락 정보부장은 그를 납치하기로 결심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한민통이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아 김대중씨를 의장으로 추대하여 대남공작에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는 취지로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대법원은 이 단체가 북한정권의 지령을 받아 대남적화에 종사하는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다. 우리 법원과 검찰은 이 단체의 핵심인물인 조직국장 곽동의씨는 북한에 잠입하여 공작원 교육을 받고 온 인물이라고 보았다. 김대중씨가 1981년에 대법원에 의해서 사형이 확정된 이유는 반국가단체 한민통의 수괴였다는 점 때문이다. 2004년 서울고등법원은 김대중씨에 대한 재심 선고 때 광주사태 간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한민통 결성 부분에 대해선 유죄인정을 파기하지 않았다.

김대중씨가 한민통 결성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는 북한의 대남공작노선과 맥을 같이 하는 연방제 통일방안을 내어놓았다. 이 통일방안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우리 헌법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즉, 한반도의 유일합법국가인 대한민국을 반국가단체인 북한과 동격으로 놓겠다는 것이 이 통일방안의 핵심이다. 여기서 김대중씨가 무슨 변명을 해도 납득할 수 없는 좌익적인 대한민국관과 거기에 기초한 현대사관이 드러난다. 그는 대한민국만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국가이며 민족사의 정통국가란 대한민국헌법 제3조를 인정하지 않는다. 논리의 자연스런 연장선상에서 그는 통일이 북한을 자유민주체제로 흡수하는 자유통일이어야 한다는 점을 수긍하지 않는다. 여기서 김대중과 대한민국의 타협할 수 없는 불화가 생긴 것이다.

이런 반헌법적, 반국가적, 친북적 성격을 가진 연방제안이기 때문에 반드시 북한정권의 대남공작에 이용될 소지가 있었다. 그 우려는 2000년 6.15 선언에서 김대중씨가 김정일의 대남적화노선을 받아들인 반헌법적인 연합연방제통일방안에 동의함으로써 현실이 되었다. 그 뒤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좌익득세와 남북한 좌파정권 공조현상, 그리고 반미광풍(反美狂風)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북한, 김대중을 대통령 시키려 박대통령 암살 기획

1973년 8월의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일본에선 정부, 언론 할 것 없이 반박정희-반한(反韓) 태풍에 휩쓸렸다. 1987년 김현희에 의한 대한항공 폭파 사건, 그리고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일간에 정보교류가 재개될 때까지 한일간엔 안보적 협력이 거의 단절되었다. 당시 대남공작의 지휘자로 등장한 김정일은 이런 반한무드를 십분 활용하였다. 북한은 한민통(韓民統)을 중심으로 김대중 구출운동을 벌이고 한민통의 행동부대 한청 소속 활동가 문세광을 포섭했다. 북한공작원은 만경봉호에서 문에씨게 박대통령 암살을 지령했다. 최근 기자가 만난 북한통일전선부의 전 요원은 북한정권이 박대통령 암살을 기획한 것은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는 길을 열어주기 위함이었다고 증언했다. 1974년 8월 문은 박대통령 대신 육영수 여사를 사살했다. 박대통령은 이듬해 조총련 와해공작인 조총련 동포 모국방문사업을 허용했다. 발전해가는 한국을 구경하고 간 조총련 동포들이 이런 정보를 조총련 사회에서 확산시키자 이탈자가 속출했다. 북한정권은 이에 대해 조총련 동포들에게 북한 방문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북한에 가서 지옥을 보고 돌아왔다. 한국의 발전상과 북한의 지옥상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조총련을 급속도로 약화시켜가기 시작했다. 승리가 패배로, 패배가 전화위복의 계기로 이어지는 남북대결의 한 드라마였다.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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